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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라면서 나의 시간들을 낭비해버렸다.
그렇게 2011년이 속절없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2012년이 시작된 지 어느덧 9일째-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요즘 읽은 책



김남희, 걷기여행1
오쿠다 히데오, 면장선거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책을 읽으면 바로 짧게라도 독후감을 남기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질 않는다.
이 중에서도 김애란 첫 장편소설은 완전 완전 좋다!

최근에 엄마가 된 친구 생각도 많이 났고
문장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확 다가오는 느낌.

이렇게 단편적으로 말고 조리있게 생각들을 적어내려가고 싶은데..
그럴 실력도 없고 사실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다.........



최근에 하는 생각 중 하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과연 무엇으로 증명해낼 수 있을까.
더 길게.. 풀어놓고 싶은데 너무 졸리다.

그리고 이제 12시가 넘어서 89일이 남았다 나의 시험은.



신경숙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소박한 책읽기


버려두었었구나, 이 곳. 
지난 석 달의 나는 대체 어디에서 무얼 했던가.
모를 일이다.  

1월에 데미안을 읽고 무언가를 쓰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버거운 작품이라 망설여졌다.
아직도 나는 나만의 독후감을 써내는 일에 서툴고 겁이 나나보다.
익명의 독자이면서도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독서를 하고 느끼는 데에 옳고 그름은 없지만, 깊고얕음은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자꾸만 부끄럽다.
그럴수록 더더욱 쓰고 또 쓰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텐데 쉽지가 않다...

어제는 날이 너무 좋아서 스탠드만 켜진 어두운 그곳에 있고 싶지가 않았다.
가벼이 산책이나 하자는 생각에 이어폰을 꽂고 걸었는데 마땅치가 않았다.
그러다 발길이 닿은 동네 도서관.
갑자기 소설책이 너무 읽고 싶어졌다.

서가를 쭉 둘러보다 신경숙 작가의 책들에서 멈췄다.
신간이 나왔다고 했을 때부터 눈여겨봤던 그 노란 책이 있었다.

<엄마를 부탁해>를 지하철에서 읽다가 남들 시선에도 불구하고 주체할 수 없이 흘렀던 눈물이 떠올라서,
그 때의 그 슬프고 아릿한 마음이 아직도 한 켠에 남아 있어서 또 신경숙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망설이기도 했다.
그래도.. 새벽 3시부터 9시까지 씌여졌다는 작가의 말을 보니 읽고 싶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새벽에 쓰인 글에서 그녀는 또 어떤 글들로 나를 흔들까 궁금해졌기에.
성장소설이고 청춘소설이며 연애소설이기도 하다는 이 작품의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을 나도 느껴보고 싶었기에.

상실이나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는 청춘을 보냈다고 말 할 수 없는걸까.
내 청춘은 사실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이들에게 주어진 시련들은 고통스럽고 버거웠다.
윤, 명서, 미루, 단, 그리고 윤 교수.
그들이 각기 겪거나 목격해야 했던 죽음에는 물론 저마다의 이유와 그만큼의 고통의 무게가 있었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데에는 시대적인 아픔이 관통되고 있었다. 늘 시위하는 이들이 있는 도시, 공기 속에 전해지는 매운 화염, 그 속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아프게 물을 수 밖에 없는 이들, 언제쯤 괜찮아질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없는 하루하루..
그런 시절을 물려줘서 미안하다던 꽃집 아주머니의 말이, 다음 세대에는 꼭 좋은 시절을 넘겨주라던 그 말이 어찌나 아프던지.
내가 겪어보지 못했기에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시절들 속에서 이렇게 아프고 슬펐던 사람들이 이들 뿐이었으랴.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실종된 미래 언니의 그 사람과 같은 사람들, 그 사람을 찾아 헤매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죽음을 만났음을 알게 되고, 그 비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전하고자 분신을 택한 미래 언니, 그런 언니를 눈 앞에서 잃고 끝내 언니 곁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미루, 군에서 의문사한 단이,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윤이는 그리고 명서는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우습기까지 한 나의 아픔 때문에 나도 한 때는 정처없이 걷고 또 걸었었다. 내 작은 슬픔과 고통이 나를 무수히 걷게 만들었었는데 하물며 그들은 어땠을지..
눈이 쌓여 가지가 꺾이기 전에 소나무에 덮인 눈을 하염없이 털어내던 어느날 밤, 윤과 명서는 자신들의 존재조차 잊은 채 그 일에 몰두했었다. 구부러지기 직전인 그 소나무 가지들이 마치 자신들의 모습인 양, 끝없이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눈을 털고 또 털며 그렇게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그사람 - 명서와 나- 윤이는 어느덧 중년에 가까워졌다.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던, 그와 함께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시간들을 지나 마지막 만남 이후 8년이 지나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이제는 그에게 더는 쏟아낼 말이 남지 않았음을 느끼는 윤이 있다. 시간의 힘이란 그런건가보다. 잊히진 않더라도 희미하고 엷게, 그래서 그 없이 그날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의 날들을 살아낼 수 있게 그렇게 만들어주는가보다. 그 시간들을 오롯이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어떤 상태. 그럼에도.. 잊히지는 않는다. 문득 문득 떠올라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은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단이와 미루의 몫까지 생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8년 마의 전화에도 그에게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어디야? 라고 묻는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여전한 것들도 있는가보다..

언젠가 언젠가는 정윤과 함께 늙고싶다, 는 그의 바람에 나는 내가 그쪽으로 갈게 하고 답한다.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을 때까지 꽤나 오랜 시간을 보내버렸지만, 그들은 그렇게 연결될 수 밖에 없는 끈들을 안고 살아왔던가보다. 그들이 늘 했던 말, 오늘을 잊지 말자, 라는 말처럼 잊지 않고 그렇게.
상처를 묻어둔 채 사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아파하고 함께 겪어내고, 또 오롯이 자신의 아픔을 감수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완전한 치유나 극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다시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오는가보다.
함께 있으면 서로를 흉측하게 할 거라는 두려움에 멀어져야만 했던 시간들, 그럼에도 언젠가는 함께 하고 싶었던 그 바람.
이제는 더이상 함께 있음이 그들을 흉측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상처가 아물어 흉터만 남아 있으므로.. 잊히진 않지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조심스레 그들의 행복을 빌어보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함께 있을 때면 매 순간 오.늘.을.잊.지.말.자. 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에필로그 中



박범신 <은교> 소박한 책읽기


어떤 이의 블로그를 보았다.
거의 하루, 이틀에 한 권씩은 책을 읽은 듯 매일같이 리뷰가 올라왔다.
그 독서량이 놀라웠고, 그 열정과 열의가 부러웠다.

처음 블로그를 만들 때에는 나도 아마 그런 걸 꿈꿨던 것도 같다.
아직은 고시생 신분이라 읽고 싶은 책보다는 읽어야 할 개론서들을 봐야 한다고
그러니 시험이 끝나고 나면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듣고 싶은 음악 맘껏 맛보고
그리고 내 느낌들을 하나씩 하나씩 적어보자고, 글쓰는 연습을 해 보자고
그랬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텅텅 비어있고 공허한 말들로만 채워져 있는지.

그러니까 솔직히, 두렵다.
나의 생각이란 게 대체 뭔지 나도 잘 모르겠고 국문과생이라는 애가 책 읽고 내 감상 적는 게 두려운 거다.
옳고 그름은 없겠지만 좋은 글을 분별하는 혜안은 분명 있어야 할텐데 그런 부분에서 자신이 없으니까
혹시 내 생각이 다수의 생각과 다를까봐, 혹은 너무 수준이 낮을까봐 하는 그런 한심한 걱정들.

어차피 이 곳은 거의 아무도 방문하지 않고, 방문한다고 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누구인지 안다고 해도
이건 어떤 책을 읽은 무수히 많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쏟아낸 생각 중의 하나- 에 불과한데 그게 뭐 그리 겁난다고.

그러니까 그냥 생각나는대로 해 보자.
그러다보면 늘겠지. 깊어지겠지. 뭔가 나아질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시작!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박범신의 소설을 처음 접했다. 올해 초에 인터넷에 연재되고 곧 출판된 것 같은데, 주변 친구들이 많이 보고 좋아했다는 건 블로그나 트윗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시험이 끝나면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집어 들었고, 그 날 저녁 내내, 그리고 다음 날 저녁 내내, 그렇게 이틀 밤 동안에 해치워 버렸다.

작가의 말에도 이 글은 밤에 쓴 글이니 독자들도 꼭 밤에 읽어달라, 는 말이 있었지만 그걸 읽은 건 책을 다 읽은 후였고 나는 그냥 왠지 바깥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읽고 싶어졌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한 것 자체가 이 책의 내용을 곡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는 시인과 은교의 나이 차이를 무색케 하는 시인의 열렬한 마음이 펼쳐지고 있는데, 그것을 나는 아마도 어쩐지 밤에 봐야할 것 같은 은밀한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머릿속으로 인물들의 이미지를 상상하여 나만의 주인공의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사실 이적요 시인의 이미지는 잘 그려지지 않았다. 소설 속 그의 나이는 일흔이었고, 그러나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이 있었고, 그러면서도 손과 목주름에는 검버선이 피어있는 할아버지였는데, 그가 써내려간 시인의 노트를 읽고 있자면 도무지 할아버지의 상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젊은 청년도 아니되고 중년의 신사도 아니되고 분명 연륜이 묻어나는 할아버지여야 할 것 같긴 한데 마땅한 이미지를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적요 시인의 뜨거움은 어떤 나이에도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떤 나이에도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은교의 젊음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그 에너지에 압도되어 버린 한 시인은 사실 나일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이다. 몸의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은 이미 한 없이 늙어버린, 어떤 에너지도 내뿜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당신들이라면 은교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은교가 참 좋았다. 
나는 여자임에도 그녀가 탐이 났다.  

그러니까 이적요 시인의 은교에 대한 욕망은, 은교를 여성으로서의 욕망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젊은 광채를 뿜어내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한 생명에 대한 욕망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한, 애증한 건 이적요 시인과 그의 제자 서지우였다는 걸 은교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불태워준 은교에게 참 고마웠다.
이미 그들은 저 세상에서 서로에 대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스승과 제자와 같은, 혹은 인생의 동반자와 같은 그들의 끈끈함이 한 순간의 오해와 불신들로 가리워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텐데, 그걸 굳이 세상 사람들에게 폭로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들 둘만 알면 그걸로 충분한 거니까.

그리고 남겨진 은교는, 자신의 시를 쓰며 그 에너지를 분출하며 그렇게 잘, 살아갈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먼저 간 두 남자를 그리워하면서.


자기소개 소박한 하루하루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아닌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을 고스란히 적는다면
그건 사회가 요구하는 자기소개서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도록 나를 소개하고 나면
그것이 진짜 '나'인가? 하는 의문을 지우기가 힘이 든다.

레포트를 100장 쓰라고 하는 것이 자기소개서 2장을 완성하는 일보다 쉽겠다고 느껴지는 건 그래서이다.
레포트는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 속에는 내가 지향하는 가치나 이상이 녹아들어 있겠지만
그것이 곧 나와 동일시 되지는 않을테니까.

그러나 자기소개서는 다르다.
그게 진짜 진정 나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그걸 받아든 사람이 보는 나는 그 두장으로 끝일테니까
그러니까 그 두 장 안에 누가 얼마나 더 진솔하게, 아니 화끈하게
나를 고용할 고용주의 시선을 마음을 잡아 끄느냐가 관건인데

다른 사람 맘에 들게끔 나를 맞추는 일에 익숙하지가 않은 사회성 제로의 나는
그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보다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을 자꾸만 써내려가게 된다.

내가 대학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 깨달음들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래서 내가 할 수 있게 된 능력들 자격들이 그들에게는 더욱 중요할텐데
나는 자꾸만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라고 자꾸만 쓰고 싶어진다.

내가 어떤 마음을 먹고 살아가는지가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적어도 기업보다는 내가 쓰는 곳은 학교니까, 내 마음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조금..
그치만 친구는, 그런 마음은 아마 누구나 기본 베이스일 것으로 여길 거라고 했다.
그렇지, 교사가 되겠다는 자들이
뚜렷한 교직관이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나 사명감 이 없을리가 없잖아.
아니 다 있을거라고 당연히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그건 기본이고, 그 이상을 보이란 말이다!

그런데.. 보일 것이 별로 없어서 나는 방황하게 된다.
결국 나는 고작,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방황하는 청춘일 뿐
그래서 써내려가기 어렵다.
내 마음 말고는 아직은 남들에게 보여진 내 능력이 없다는 것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어서.

진짜 나를 소개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난 어떡해야 하지.
진짜 나........? 그런 게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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