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블로그를 보았다.
거의 하루, 이틀에 한 권씩은 책을 읽은 듯 매일같이 리뷰가 올라왔다.
그 독서량이 놀라웠고, 그 열정과 열의가 부러웠다.
처음 블로그를 만들 때에는 나도 아마 그런 걸 꿈꿨던 것도 같다.
아직은 고시생 신분이라 읽고 싶은 책보다는 읽어야 할 개론서들을 봐야 한다고
그러니 시험이 끝나고 나면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듣고 싶은 음악 맘껏 맛보고
그리고 내 느낌들을 하나씩 하나씩 적어보자고, 글쓰는 연습을 해 보자고
그랬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텅텅 비어있고 공허한 말들로만 채워져 있는지.
그러니까 솔직히, 두렵다.
나의 생각이란 게 대체 뭔지 나도 잘 모르겠고 국문과생이라는 애가 책 읽고 내 감상 적는 게 두려운 거다.
옳고 그름은 없겠지만 좋은 글을 분별하는 혜안은 분명 있어야 할텐데 그런 부분에서 자신이 없으니까
혹시 내 생각이 다수의 생각과 다를까봐, 혹은 너무 수준이 낮을까봐 하는 그런 한심한 걱정들.
어차피 이 곳은 거의 아무도 방문하지 않고, 방문한다고 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누구인지 안다고 해도
이건 어떤 책을 읽은 무수히 많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쏟아낸 생각 중의 하나- 에 불과한데 그게 뭐 그리 겁난다고.
그러니까 그냥 생각나는대로 해 보자.
그러다보면 늘겠지. 깊어지겠지. 뭔가 나아질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시작!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박범신의 소설을 처음 접했다. 올해 초에 인터넷에 연재되고 곧 출판된 것 같은데, 주변 친구들이 많이 보고 좋아했다는 건 블로그나 트윗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시험이 끝나면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집어 들었고, 그 날 저녁 내내, 그리고 다음 날 저녁 내내, 그렇게 이틀 밤 동안에 해치워 버렸다.
작가의 말에도 이 글은 밤에 쓴 글이니 독자들도 꼭 밤에 읽어달라, 는 말이 있었지만 그걸 읽은 건 책을 다 읽은 후였고 나는 그냥 왠지 바깥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읽고 싶어졌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한 것 자체가 이 책의 내용을 곡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는 시인과 은교의 나이 차이를 무색케 하는 시인의 열렬한 마음이 펼쳐지고 있는데, 그것을 나는 아마도 어쩐지 밤에 봐야할 것 같은 은밀한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머릿속으로 인물들의 이미지를 상상하여 나만의 주인공의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사실 이적요 시인의 이미지는 잘 그려지지 않았다. 소설 속 그의 나이는 일흔이었고, 그러나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이 있었고, 그러면서도 손과 목주름에는 검버선이 피어있는 할아버지였는데, 그가 써내려간 시인의 노트를 읽고 있자면 도무지 할아버지의 상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젊은 청년도 아니되고 중년의 신사도 아니되고 분명 연륜이 묻어나는 할아버지여야 할 것 같긴 한데 마땅한 이미지를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적요 시인의 뜨거움은 어떤 나이에도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떤 나이에도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은교의 젊음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그 에너지에 압도되어 버린 한 시인은 사실 나일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이다. 몸의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은 이미 한 없이 늙어버린, 어떤 에너지도 내뿜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당신들이라면 은교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은교가 참 좋았다.
나는 여자임에도 그녀가 탐이 났다.
그러니까 이적요 시인의 은교에 대한 욕망은, 은교를 여성으로서의 욕망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젊은 광채를 뿜어내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한 생명에 대한 욕망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한, 애증한 건 이적요 시인과 그의 제자 서지우였다는 걸 은교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불태워준 은교에게 참 고마웠다.
이미 그들은 저 세상에서 서로에 대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스승과 제자와 같은, 혹은 인생의 동반자와 같은 그들의 끈끈함이 한 순간의 오해와 불신들로 가리워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텐데, 그걸 굳이 세상 사람들에게 폭로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들 둘만 알면 그걸로 충분한 거니까.
그리고 남겨진 은교는, 자신의 시를 쓰며 그 에너지를 분출하며 그렇게 잘, 살아갈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먼저 간 두 남자를 그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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